Love & Paris

파리에서 음악과 사랑을…

‘투어.앨범’ 카테고리의 보관물

스트라빈스키

게시자: lovenparis 켬 10월 5, 2008

페테르부르크 출생. 양친의 권유에 따라 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면서 N.A.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작곡 개인지도를 받았다. 1908년 관현악곡 《불꽃 Feu d’artifice》으로 러시아발레단의 댜길레프에게 인정을 받고, 그의 의뢰로 발레곡 《불새 L’oiseau de feu》(1910)·《페트루슈카 Petrushka》(1911)를 작곡하여 성공을 거둠으로써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그 후 제3작인 《봄의 제전 Le Sacre du printemps》(1913)은 파리악단에서 찬반 양론의 소동을 일으켰으나, 그는 이 곡으로 당시의 전위파 기수의 한 사람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이 곡은 혁신적인 리듬과 관현악법에 의한 원시주의적인 색채감, 그리고 파괴력을 지닌 곡으로 앞의 2곡과 함께 이 시기의 그의 대표적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혁명으로 조국을 떠난 그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신고전주의 작풍으로 전환하였으며, 발레곡 《풀치넬라 Pulcinella》(1919)·《병사 이야기 Histoire du soldat》(1916)·《결혼 Les noces》(1912∼1923) 등의 작품에 그의 새로운 작풍이 나타나 있다. 고전파와 바로크스타일의 정신을 부흥시키려고 한 음악풍조는 제1 ·2차 세계대전 사이에서 유럽음악의 주류를 이루었는데 그는 이 시기의 풍조에 선도적 역할을 했으며, 오페라 오라토리아인 《오이디푸스왕 Oedipus Rex》(1927)과 《시편교향곡 Symphony of Psalms》(1930) 등을 통해 이 작풍의 완성을 보았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45년 미국으로 망명, 귀화하였다. 그는 한때 침체기를 거쳐 《3악장의 교향곡 Symphony in 3 Movements》(1945)과 《미사 Mass》(1948) 등으로 재기, 다시 제2의 전기(轉機)를 맞이하였다. 이는 이미 쇤베르크일파가 취해 온 음렬작법(音列作法)으로부터 12음작법(音作法)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었으며, 《칸타타 Cantata》(1952)에서 시작하여 《아곤 Agon》(1957)과 《트레니 Threni》(1958) 등의 시도로 차차 엄격한 12음작법을 구사하였다.

그 이후로는 종교음악에 관심을 두어 《설교, 설화 및 기도 a Sermon, a Narrative and a Prayer》(1961), 칸타타 《아브라함과 이삭 Abraham and Isaac》(1963), 합창곡 《케네디의 추억을 위하여  la mémoire de Kennedy》(1965) 등의 작품을 남겼다. 저서로는《내 생애의 연대기 Chronicle of My Life》(1935)와 그가 하버드대학에서 강연한 것을 정리한 《음악의 시학 Poetics of Music》 등이 있다

현대음악 연구소IRCAM 옆에 러시아 출생의 유명 작곡가이자 한동안 프랑스 국적을 가졌던 이고르 피오도로비치 스트라빈스키Igor Fiodorovitch Stravinsky를 기념하여 1983년에 조성된 광장의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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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로 (프랑스 작곡가)1823~1892

게시자: lovenparis 켬 8월 15, 2008

파리 Pere lachaise 묘지의  랄로의 무덤  전철3번선 Pere lachaise 하차

 

작곡가로서 랄로의 지명도는 가장 성공적이고 개성적인 세 개의 작품, 즉 협주곡<스페인 교향곡>, 오페라<이스의 왕>, 발레음악<나무나>에 기인한다. 다른 직업을 가지기 원했던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일찍부터 음악에 심취한 랄로는 결국 고향 리유를 떠나 파리 음악원에 입학, 하베네크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다.

틈틈히 작곡을 배워 첫 작품으로 두 개의 트리오를 선보였으나 인정을 받지 못하자 실의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콘트랄토로 활약하던 성악가와 결혼하면서 다시 창작에 힘을 쏟았고 실러의 대본에 기초한 오페라 <피에스크>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 오페라는 무대에 올려지지 못했다.

이후 가곡 <오바드>(1872)와 <바이올린 협주곡 F장조>(1874)로 점점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는 마침내 1875년 <스페인 교향곡>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곡의 연주는 스페인 출신의 대바이올리니스트 파블로 사라사테가 바이올린을 맡아 더욱 화제가 되었다. 계속해서 1882년에 파리 오페라단에서 발레음악 <나무나>를 선보였고, 1888년엔 파리 오페라 코믹 극장에서 매혹적인 민속 선율로 가득찬 오페라<이스의 왕>을 올려 절찬을 받았다.

랄로는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죽었지만 스페인 혈통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간직한 혈통을 음악을 통해 채색했고, 이것이 그에게 성공을 안겨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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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 무덤

게시자: lovenparis 켬 8월 4, 2008

 

프랑스의 작곡가. 드뷔시의 개성적인 양식은 현상적으로는 선법에 의거, 음색적인 계기를 뚜렷이 표면에 내세워 바로크 후기 이후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던 기능화성법에 의한 고전적 조성을 극복하고, 나아가서는 주제법·율동법 분야에도 점차 혁신을 가져오게 했다.

드뷔시의 무덤은 에펠탑 근처 Passy 묘지에 있다.

 M.6 Trocadero 역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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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몽땅 Yves Montand

게시자: lovenparis 켬 7월 24, 2008

1991년 11월 9일 프랑스의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국은 모든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국민가수이자 국민배우인 이브 몽땅 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였다. 대표적인 샹송 고엽을 비롯해 그의 노래가 라디오를 통해 전국에 울려퍼졌고 텔레비전에서는 그가 출연한 영화가 방영됐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성명을 발표해 “그와 함께 우리시대의 위대한 목소리와 배우로서의 뛰어난 재능이 사라졌다”고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샤를 드골 사망 이후 프랑스는 슬픔에 잠겼다.

이브 몽탕은 이처럼 프랑스를 대표하는 가수이자 영화배우였지만 그의 생애를 더욱 빛나게 했던 것은 노동자계급의 편에서 좌파 정치활동을 벌여 온 것이었다. 프랑스 공산당(PCF)의 당원이자, 정치영화의 배우로 활동했던 그는 정치활동과 예술을 결합시킨 프랑스 최고의 좌파 예술가였다

가수이며 배우인 이브몽땅은 20세기 프랑스의 최고의 인기있는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그의 본명은 IVO Livi 이며 1921년 이탈리아 토스카니 지방의 작은 마을 에서 태어났다.  가족 모두가 프랑스로 이주하여 1929년에는 프랑스 국적을 얻었고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이브 몽땅은 11살때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취직하게 된다. 14살이 되었을때는 그의 누나가 일하는 미용실에서 일하게된다.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이브몽땅은 수줍은 성격을 가지고있었는데 1938년에 작은 역할로 뮤지컬에 데뷔하면서 본명대신 이브몽땅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된다.

점점 더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성공을 하게된 이브몽땅은 세계대전으로 잠시 활동을 접게되지만 전쟁후에는  파리에서 새로운 성공을 거둔다.에디뜨 피아프의 도움으로 더욱 유명해진 이브 몽탕은 영화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헐리우드가 그에게 주목하기도 했지만 당시 매카시즘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던 미국은 그의 가족의 공산주의 전력을 들어 입국을 불허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가수이자 배우인 몽탕의 인기는 더욱 커져갔다. 1951년 그는 당시 인기 여배우인 시몬느 시뇨레와 만나 이듬해 결혼을 했다.

그가 공산당 활동을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쯤이었다. 그는 1950년 원자폭탄에 반대하는 선언문에 서명하고 프랑스 공산당의 당원으로 가입했다. 당대 최고의 스타가 공산당 당원이 된 것이다. 그의 아내 시몬느 시뇨레 역시 공산당 당원으로 가입해 거리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몽탕은 가수, 배우 생활을 하면서도 정치집회에 참가해 연설을 하면서 정치적인 활동을 벌였고 1956년에는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을 방문해 환대를 받았다. 소련군의 헝가리 침공이 있었던 이 때 몽탕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

매카시즘의 열풍이 잦아들었던 1960년 그는 아내인 시몬느가 상을 받기 위해 로스앤젤리스에 머무는 동안 마릴린 먼로와  사랑합시다 라는영화를 찍었다. 영화보다는 그와 마를린 몬로와의 염문이 세인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의 무덤은 파리 Pere lachaise 묘지에 있다

전철 Pere lachaise 하차.

 

 

 

 

 

 

 

 

 

이브 몽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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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메리 성당

게시자: lovenparis 켬 7월 23, 2008

퐁피두 센터 옆에 위치한 생 메리 성당은 성인 메리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으면 그가 살고 죽은 장소 이기도 하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내부가 노트르담 성당과 비슷하여 작은 노트르담 성당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Flamboyant(불길이 타는듯한) 양식으로 되어있으며 바로크 미술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작곡가 카미유 생상이 오르가니스트로 있었던 곳 이기도 하다.

주소

74 rue de la verrerie 75004

비지트 가이드 매월 첫째,셋째 일요일 콘서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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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모리슨

게시자: lovenparis 켬 7월 18, 2008

 

1943-1971 미국 가수이자 시인, 작곡가, 작가, 영화 감독이다. 

그룹 더 도어즈의 리드 싱어이자 작곡가로 유명하다. 또한 여러 시집을 썼고,

다큐멘터리나 단편 영화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짐 모리슨의 무덤은 현재 파리의 PERE LACHAISE 무덤에 있다.

전철역 Pere Lacha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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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의 창시자 – 아돌프 색소

게시자: lovenparis 켬 7월 14, 2008

 색소폰의 창시자 아돌프 색소의 무덤입니다.

                                    몽마르트 묘지 . 전철 2번또는 13번 Place de clichy 에서 하차

 

벨기에의 아돌프 색소가 만들어 1846년 파리에서 특허를 얻었다. 마우스 피스는 클라리넷과 비슷한 싱글리드이고 관은 금속으로 된 포물형 원추관이다. 또 클라리넷은 폐관진동 이지만 이것은 플루트나 오보에처럼 개관진동 이다. 색스는 같은 군에 속하는 악기로 넓은 음역을 연주할 수 있도록 소프라니노 ·소프라노 ·알토 ·테너 ·바리톤 ·베이스 ·콘트라베이스의 7가지를 한 쪽으로 하여 취주악용과 관현악용의 2가지를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 알토와 테너가 넓은 분야의 음악에 쓰이고 있다. 소프라노는 관이 곧지만 알토 이하는 상부와 하부가 S자형이고, 음색은 목관과 금관의 중간으로 폭넓은 육성적인 울림이 독특하며, 저음악기에서 고음악기까지 음색의 통일이 잘 되어 있다.

연주법은 다른 목관악기보다 쉬우며 발명 후 급속히 일반화되었다. 취주악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나, 관현악에서는 독특한 울림 때문에 다른 목관악기와 조화가 잘 잡히지 않아 효과면에서 독주부분에 쓰이는 일은 있어도 목관악기로서의 정석적인 자리는 없다. 한편 경음악분야에서는 재즈의 유행과 함께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주요한 악기가 되었다. 예술음악에서는 발명 직후에 프랑스의 작곡가들이 사용하였는데, 특히 G.비제의 모음곡 《아를의 여인》이 유명하다. C.L.A.토마, 마스네, R.슈트라우스, 힌데미트와 같은 작곡가들도 곡 중에 이 악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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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리오즈

게시자: lovenparis 켬 7월 10, 2008

 

루이 엑토르 베를리오즈(Louis-Hector Berlioz, 1803년 12월 11일 ~ 1869년 3월 8일)는 프랑스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다. 1830년에 발표한 《환상 교향곡》으로 유명해졌다. 베를리오즈는 “표제 음악“이라는 새로운 극적인 관현악곡 스타일을 창시했다.

베를리오즈는 전세대인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폰 글루크(Christoph Willibald von Gluck) 그리고 후세대인 리하르트 바그너아르놀트 쇤베르크처럼 특별한 음악가문 출신이 아니었으며, 특별한 음악교육을 받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베를리오즈를 의사로 키우고 싶어했지만, 베를리오즈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면서 작곡가의 길을 걸었다.

이미 음악원 시절부터 악기의 표현력에 관심을 기울여 교수들과 자주 싸웠던 베를리오즈는 음색과 효과를 잘 이용할 줄 알았다는 평을 받으며 후기 낭만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음악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고 주장한 베를리오즈는 문학과 음악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작곡 활동을 했다. 그러나, 베를리오즈는 파리에서 음악 비평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적을 만들었고, 생전에는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프랑스 음악계로부터는 결코 환영받지 못했다. 프랑스 음악계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은 그가 죽은 후였다.

 

 

베를리오즈의 무덤   

전철 2번 또는 13번 place de clichy 하차

몽마르트 묘지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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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 Garnier

게시자: lovenparis 켬 7월 3, 2008

 

개관: 1875년 1월 15일

객석수: 1979석(입석 포함 2200석)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 1825∼98) 

교통: Metro Line 3, 7, 8(Opera),  RER Auber

극장 투어(개별 입장): 오전 10시∼오후 4시30분.

가이드 투어: 프랑스어 수ㆍ토ㆍ일 오전 11시30분, 오후 3시30분, 영어 수ㆍ토ㆍ일 오전 11시30분, 오후 2시30분 (7월 1일부터 8월31일까지는 매일 오전 11시30분, 오후 2시, 오후 3시)

매표소: 0892 89 90 90 (월-금 오전 9시~오후 6시, 토 오전 9시~오후 3시)

기타: 가스통 르루의 소설’오페라의 유령‘(1910년)의 배경,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마리 앙트와네트’(2006년) 중 가면 무도회 로케 장소(중앙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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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의 작곡가 비제의 무덤

게시자: lovenparis 켬 7월 1, 2008

 

전철역 2번 또는 3번 pere la chaise 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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